푸르니에의 유려하고 기품 있는 첼로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서, 청년은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매일 근처의 강에 가서 물고기나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일을.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점점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 참 이상한 얘기로군. 인간이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 그런데도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알맹이를 잃어간다, 그저 텅 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더 텅 비고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 사고의 흐름을 어디에선가 바꿔놓을 수는 없을까?
_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어릴 적 우리의 마음은 현재만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기쁜 일이 벌어지면 웃고, 슬픈 일이 벌어지면 울었습니다. 갓난아기였던 우리들은 아직 인지발달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엄마가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치 엄마가 세상에서 없어져버린 것처럼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떠나갈 듯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그것이 지금 현재 진짜로 벌어진 일처럼 받아들여, 두려움에 떨곤 했습니다. 가상과 현실, 과거나 미래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우리들에게는 지금, 여기만이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지금 이곳이 아닌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머리로만 인식할 뿐, 우리의 마음은 어린 시절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님을 아는데도 비명을 지릅니다. 우리는 마음이 과거와 미래를 떠돌면서 여러 가지 상상들이 떠오르면, 그것이 마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불안감, 우울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서 나타나는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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