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의 저는 평생 살이 안 찌는 체질인 것처럼 살아왔습니다. 많이 먹어도(혹은, 많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그에 비해 체중은 항상 정상 범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힘들다고 하는 레지던트 1년차를 하면서 그 생각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퇴근이란 것은 먼 나라의 일이었고, 거의 병원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다보니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데, 그런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누적되어 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바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저녁마다 선배들이 사주는 치킨을 먹으면서, 잠시나마 위장에서 느껴지는 포만감에 기분도 편해지고 피로도 해소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당직근무를 하며 병동에, 응급실에, 바쁘게 뛰어다니다 밤 11시가 넘어 겨우 당직실에 돌아와 잠시 자리에 앉았을 때, 허기진 느낌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동기가 사서 넣어둔 나가사키 카스테라 큰 사이즈 한 줄이 놓여있었습니다. 폭신한 빵에, 아래쪽에는 굵은 설탕이 촘촘히 박혀있는 카스테라는 마치 입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한 조각을 입안에 넣은 순간부터 저는 먹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큰 카스테라를 거의 다 입안에 넣고, 겨우 두 조각이 남았을 무렵 저는 가까스로 먹는 것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먹는 것에서 조절감을 잃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저는 그 때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1년차가 끝나자, 제 체중은 15킬로그램이 불어 있었습니다. 몸무게가 늘어나자 허기를 참는 것이 더 힘들었고, 점차 먹는 양도 늘어났습니다.

체중을 감량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레지던트 4년차가 될 무렵이었습니다. 체중조절에 대한 각종 논문을 읽고, 학회에 참석하며 최신 지견을 공부했는데, 결론은 굉장히 간단했습니다. 진리는 단순하다! 에너지 섭취를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늘리면, 그 결과로 체중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적게 먹고, 운동을 하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운동선수들처럼 하루 종일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운동을 해서 소모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체중감량에 따르는 근육 손실을 줄여주기에, 기초대사량이 감소하지 않게 막아주는 체중감량의 필요조건이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적게 먹고, 운동을 하는 ‘행동변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 그 결과로 체중은 감량되는 것입니다. 행동수정(behavioral modification)이 핵심적인 내용이었고, 이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행동수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식단을 어떻게 변경해야 할 지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다이어트 식단에는 여러 가지 종류들이 있는데, 저칼로리 식단, 고 단백 저 탄수화물 식단(Atkins diet), 지중해식 식단, 간헐적 단식 등등과 그것들의 변형된 형태들이 아주 많이 존재합니다. 식단의 핵심은 결국 에너지 섭취를 줄이는 것이므로, 저칼로리 식단은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저칼로리 식단의 실제 핵심은 양을 줄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1인분으로 제공된 양을 딱 절반으로 갈라서, 절반만 먹고 중단했습니다. 시각적으로도 기준이 보이니까 실천하기가 간단했습니다. 양을 줄이는 와중에, 식단의 구성은 고 단백 저 탄수화물 식단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과체중이나 비만인 상태에서는 몸이 기본적으로 당뇨와 가까운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당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탄수화물을 적게 섭취하는 것이 체중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가지 연구가 있습니다. 다만, 체중이 정상 범위에 있을 때는 이런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하기에, 어느 정도 감량이 되면 굳이 이런 식단 구성을 지속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건강한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은 몸과 마음에 이롭습니다.

그리고, 정신과적인 관점에서 볼 때, 튀김을 전혀 먹지 않는다든가, 아이스크림은 금지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식단 구성에서 음식의 종류를 완전히 제한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튀김, 아이스크림, 초콜릿, 사탕 같은 음식들이 에너지 밀도가 높아서, 많이 먹었을 경우 다른 음식들보다 체중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 아이스크림을 조금 먹는다고 바로 살이 찌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음식들을 참는 데에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면, 체중감량을 위해 변화시킨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식이장애 환자 분들 중에 이런 음식들을 참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폭식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려고 애쓰면, 역설적으로 더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먹고 싶으면 너무 참지 말고, 딱 한입만 먹으면 됩니다. 그렇게 내 몸의 욕구를 조금씩 충족시켜주면, 점점 참는 것이 쉬워집니다. 먹고 싶으면 언제든 (한입이지만) 먹을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참아야 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방식으로 식이습관을 변경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허기를 줄여주는 것입니다. 체중이 증가된 상태에서는 허기가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을 참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곤약젤리 같은 음식을 이용하기도 하고, 식욕억제 약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 ‘다이어트 약’이라고 불리는 약물을 복용한다고 자동적으로 살이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행동수정을 계획하고 유지하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약물을 보조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핵심적인 부분이 자주 간과되기에, 변화된 행동이 유지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체중감량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요요 현상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식단 조절을 하는 와중에, 역시 정신적인 에너지가 적게 소모되는 형태로 신체 활동을 늘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차를 타고 다니는 길을 걸어서 다닌다든가, 계단은 걸어서 올라간다든가,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다든가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된 행동이 유지될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찾아서, 그것을 유지해야 체중감량에 따르는 근육 손실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근육 손실이 줄어야 기초대사량 감소를 막을 수 있고, 그래야 에너지 소모를 유지한 상태에서 식단 조절을 통해 에너지 섭취를 줄여 체중 감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매주 1킬로그램씩 체중을 감량해 나갔습니다. 3달이 지나자 마술처럼 12킬로그램이 감량되었고, 그 이후에는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고 변화된 행동을 유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는데, 자연스럽게 2킬로그램 정도가 더 감량되었습니다. 변화된 행동을 일정 시간 동안 지속하자, 그것이 습관이 되었고, 그래서 편안하게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체중이 감량되자 허기를 느끼는 것도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1년 이상을 변화된 행동을 유지하니 체중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위치에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처음엔 체중감량과 정신건강의학과가 무슨 관계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행동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체중감량을 다루는 것도 정신건강의학과의 영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시키는 것. 그것이 모든 변화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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