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만나는 분들께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는 것이 내게 무언가 부족하고 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혼자서 극복해봐라’, ‘왜 병원에 의존하려고 하냐’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독 정신과적 질환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퍼져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것도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의지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신 분들을 보면 사실 치료자로서 대단하다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삶에서 정신적 어려움과 고통을 겪지만 그런 말들 때문에 혼자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아등바등 하다가 병을 키워 늦게 병원에 오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애초에 병원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조차 먹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실제 병원에 방문까지 하시는데,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겠지요. 처음 내원하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를 지속하며 증상이 많이 소실된 후, 정신치료/심리치료나 약물치료로 유지치료를 하고 계신 분들에게도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주변의 오해들이 어려움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정신치료/심리치료의 경우에는 급성 증상을 완화시키고, 이후에 현재 겪고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 그리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데 보통 이런 과정 전체가 최소 수 주에서 수 개월까지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적어도 수 주에서 수 개월 이상 어떤 일을 지속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수 개월, 어떤 경우는 수 년 동안 치료를 지속하시는 분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듭니다. 우리 생활에서 어떤 일을 그만큼 꾸준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운동을 시작해도, 다이어트를 시도해도, 고작해야 몇 주를 유지하기도 버겁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길게,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그걸 해내시는 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면 저 역시 의지를 되새기게 됩니다.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무언가 부족하고 흠이 있어서일까요? 지금 상태에서 변화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과적 약물치료의 경우 어찌보면 역사가 짧은 편입니다. 사실상 제대로된 정신과적 약물이 최초로 개발된 것이 1950년대 초반이고, 현재 항우울제로 가장 널리 쓰이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1970년대에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다보니, 정신과 약물은 중독된다는 등 약물 사용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하지만, 중독을 치료하는 곳이 바로 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적절한 용량과 용법으로 사용하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어찌보면 약물치료는 내 몸에 부족한 성분을 보충해주는,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비타민 결핍으로 괴혈병, 구루병 등 여러 질병을 겪었는데, 지금은 영양을 잘 섭취하게 되고 비타민 보충제도 널리 보급되면서 그런 일은 거의 없어졌지요. 정신과 약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개발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지 말 지는 스스로의 결정이겠지만, 자동차를 탈 수 있는데 굳이 일부러 불편한 마차를 타고 다닐 이유가 있을까요? 마차를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도 ‘중독된다’는 이유(사실이 아닙니다)로 사용을 꺼리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이런 약물에 대한 오해들이 유독 널리 퍼져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로 마음 먹으신 분들, 그리고 치료를 지속하고 계신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삶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을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현재 존재하는 최고의 방법을 이용해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