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약은 될 수 있으면 안 먹는 게 좋다’, ‘약을 계속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 ‘정신과 약은 중독된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약보다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물질을 섭취한 후 우리 몸에 흡수되어 특정 작용을 한다고 생각하면, 약과 음식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최초의 약물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왔습니다. 대표적인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의 경우,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해열과 진통을 위해 사용한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출된 살리실산에서 유래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화합물들을 생산할 수 있게 되니, 인류는 굳이 모든 것을 자연물에서 추출하지 않고도 수많은 약물 후보 물질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약물의 새로운 부흥기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확보된 약물 후보 물질들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형태로 정밀하게 정제된 후,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3단계 이상의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으로 출시 허가를 받습니다. 엄격하게 고른 후보 물질이라도 이 과정을 전부 통과하는 것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약물 출시 후에도 계속 모니터링을 하면서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면 허가가 취소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어찌보면 일반적인 음식들보다 더욱 철저히 관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과 약물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1950년대에 첫 항정신병약물인 클로르프로마진이 발견된 것이 정신과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정신과 치료는 주로 정신치료/심리치료만 시행하거나,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 장기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최초의 정신약물이 개발되면서 획기적인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1세대 약물들이 많이 개발되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현재 항우울제로 가장 널리 쓰이는 최초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인 플루옥세틴(상품명 푸로작)이 개발되어 1980년대에 비로소 출시되었습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국내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한 새로운 ‘문명의 이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시간이 더욱 부족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사람들은 비타민 부족으로 다리 힘이 약해져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각기병), 출혈이 멈추지 않는 등(괴혈병) 여러 가지 질병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충분한 영양 공급과, 쉽게 구할 수 있는 비타민 보충제 덕분에 비타민 부족으로 고통받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어찌보면 정신과 약물도 자연 상태에서 몸에 부족한 성분을 보충해주는 비타민 보충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 복용함으로써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과거에 비타민 부족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현대의 비타민 보충제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처음 보는 문명의 이기에 거부감을 느끼고 꺼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부족한 것을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머리로는 이해가 되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수 있겠지요. 정신과 약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적절한 약물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용법으로 복용하는 것은 오히려 내 몸에 더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시는 분들께서 좀더 마음 편하게 약물치료를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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